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며칠 전 산밭에 아내와 생강을 심고 짚을 덮었습니다. 다음날 비가 많이 내린다기에 부랴부랴 서둘렀지요. 두둑에 짚을 덮어두면 풀이 잘 나지 않고, 큰비가 내려도 흙이 쓸려나가지 않고, 습도 조절도 되고, 이런저런 유익한 일이 많습니다.
아내는 이번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짚을 덮고, 줄을 치자고 했지만 내가 억지로 고집을 피워 짚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애써 덮어두었던 짚이 밤새 몰아닥친 거센 바람에 다 날아가버렸습니다. 나는 비가 많이 내리면 줄을 치지 않아도 짚이 바람에 쉽게 날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문제였습니다. 그날 밤, 봄바람이 아니라 여름 태풍처럼 바람이 세게 불어 손수레가 날아가고, 개집도 날아가고, 나무가 넘어지고, 전기가 끊어진 집도 많았습니다.
며칠 뒤, 아내와 나는 하루종일 날아간 짚을 모아 다시 생강밭 두둑에 덮고 줄을 쳤습니다. 지난겨울에 산에 가서 생강밭에 덮을 부엽토(낙엽 따위가 썩어서 된 흙)를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엽토를 양파밭에 거의 다 쓰는 바람에 짚을 덮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농약과 화학비료,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부엽토를 많이 씁니다. 그래서 겨울에 틈을 내어 다음해 쓸 부엽토를 긁어 모아둡니다. 부엽토는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하고, 비닐 대신 풀을 잡아주기도 하므로 보물 가운데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어쨌든 농사지으며 별것도 아닌 일로 아내와 티격태격 다툴 때가 잦습니다. 다투는 까닭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날씨에 따라 무엇을 심고 거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차이로 일어나는 다툼이 가장 빈번합니다. 지난해에도 들깨 때문에 말다툼을 했습니다.
“들깨는 이웃들보다 한 보름 늦게 심어야 해요. 우리 밭은 햇볕이 좋아서 더 잘 자라거든요. 더구나 감자 캔 자리에 거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조금 늦게 심어도 돼요. 마을 할머니들이 들깨를 일찍 심으면 키만 쑥쑥 자라 거둘 게 없대요.”
하지만 나는 아내 말을 무시하고 일찍 심는 바람에 들깨 키가 내 키보다 더 자라 수확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당연히 아내 말대로 수확량도 줄었습니다. 수수를 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수는 시기를 잘 맞추어 심어야 혀. 가을 들판에 나락(벼)이 익으면 참새들이 쪼아 먹으러 논으로 간다니까. 참새들을 논으로 보내놓고, 그때부터 수수가 익어야 새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나락보다 수수가 먼저 익으면 안 된다니까.”
두세번이나 마을 할머니들에게서 이 말씀을 들었는데도 함부로 듣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수확량이 반으로 줄었습니다.
아내와 내가 도시에서 살 때는 서로 다른 일터(직장)에 나갔으므로 아침마다 헤어지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되고부터는 아침마다 아내와 만나는 연습을 합니다. 같이 일어나 같이 몸 풀고 같이 씻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설거지하고 같이 새참을 챙겨 들녘으로 갑니다. 하루 내내 그림자처럼 붙어 다닙니다. 그러니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랑싸움’을 자주 하게 됩니다. 지구온난화로 올해는 한 일주일 앞당겨 고추 모종을 심는 마을 어르신들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또 ‘사랑싸움’을 할 것입니다.
“고추 모종 일찍 심어서 냉해를 입으면 자라지도 않아요. 그러니 5월5일 무렵에 심어야 안심할 수 있어요.”
“아니, 내일 비 온다는데 그냥 심지. 비 오면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데, 무어 5월5일까지 기다려요.”
서정홍(시인)
▶서정홍 시인은
경남 합천 황매산 기슭의 산골 마을로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다. 시집 <58년 개띠>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와 산문집 <농부 시인의 행복론> <부끄럽지 않은 밥상> 등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과 우리나라 좋은 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