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경기 의정부로 이어지는 동일로(3번국도)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 7호선 장암역 맞은편 수락산쪽 계곡으로 접어들면 아담한 한옥이 나온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고택 사랑채다. 고택 뒤편 능선에는 서계의 묘소가 있다. 붕당싸움에 지친 박세당이 불혹의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귀농해 평생을 보낸 곳이다. 그가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서 숙종 2년(1676년) 중국의 여러 농서를 참조해 편찬한 책이 바로 <색경(穡經)>이다.

　혹자들은 <색경> 하면 중국의 <소녀경>이나 <홍루몽> 따위의 연분홍빛 ‘색(色)’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색경>의 ‘색(穡)’은 추수, 즉 거둔다는 뜻이다. 천자문에 ‘치본어농(治本於農) 무자가색(務玆稼穡)’, 농업을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으니 봄에 씨 뿌리고(稼) 가을에 거두어들이는(穡) 것을 힘쓴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가색’은 농업을 뜻하니 <색경>은 농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경서라는 의미다.

　<색경>은 상·하 2책으로 구성돼 상권에서는 토지와 식량작물, 원예·화훼·과수, 축산과 양어에 대한 기술을 담고있으며 하권은 뽕나무 재배와 양잠만을 다루고 있다. 이는 <색경>이 중국 원나라의 <농상집요>를 많이 인용했기 때문이다. <농상집요>는 비가 적은 중국 화북지방의 농법이 중심인 관계로 조와 보리·밀이 벼농사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세당은 <색경>의 서문에서 ‘농사의 최고 스승은 경험이 많은 농부’라는 논어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농사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경험이 많은 농부한테 얻어듣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으로 연구한다면 <색경>은 농부의 영원한 스승이 돼 모두가 배고픔과 추위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진한 애농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색경>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른바 ‘일기예보’다. 사람과 ‘알파고’가 내기 바둑을 두는 시대지만 날씨는 아직도 완전한 인간의 영역이 아닌데 하물며 옛날에는 오죽했으랴. <색경>은 비가 오고 안 오고, 풍년 여부를 농가의 경험과 하늘의 해와 달, 산천과 초목, 육갑(六甲)까지 동원해 판별하는 수십가지에 달하는 당시 일기예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색경>은 또 상권의 총론격인 땅의 이용편에서 ‘하늘은 사계절을 알리고 땅은 먹고 입는 것을 낳지만 사람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는다’며 농가가 달별로 해야 할 일을 월령(月令)으로 엮어 하늘과 동업하는 농가들이 때를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리거나 거둘 수 있도록 했다.

　◇참고도서=<색경>(고농서 국역총서, 농촌진흥청)

　한형수 문화부장 hsha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