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상담실을 찾은 사람은 남편과 아들이었지만 그들의 문제는 부인의 의부증(疑夫症)이었다. 한달에 한번 주기로 남편을 의심하고 부부싸움을 하던 것이 이제는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됐다. 부인은 남편의 모든 행동에서 외도의 단서를 찾으려 했고, 대학생인 아들까지도 아버지를 감시하도록 종용했다.

　남편은 결백하다며 아내에게 모든 생활을 투명하게 알렸고 휴대전화 통화내용과 모든 약속일정을 부인에게 미리 알려주었지만 부인은 남편의 행동이 오히려 치밀한 거짓이라며 의심했다. 남편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도 의심했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갖춰 입어도 다른 여자에게 잘 보이려 멋을 낸 거라며 의심했다.

　남편은 어떤 행동을 해도 아내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 했다. 부인은 사업하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아들을 남편의 회사에 가서 일하게 하였다. 명목은 아빠 밑에서 일을 배우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감시하고 매시간 보고해야 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두사람 모두 의부증에 지쳐 가고 있었다. 아들은 우울증과 분노로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 역시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고 있었다. 온 가족이 시커먼 바다에 빠져드는 상황이며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죽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상담이 필요한 것은 부인이지만 부인에게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이야기하면 자신을 환자로 만든다며 더 난리를 치면서 가족을 괴롭힌다고 했다.

　결국 남편과 아들의 상담을 통해 이 가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남편은 정말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부인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아들은 아버지의 편이 돼, 아버지의 고통에 대해 매우 공감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이 가족의 구조는 멋진 남편과 환자인 아내, 그리고 아버지의 편이 된 아들이었다. 잘잘못을 떠나 현재의 구조를 보면 부인은 매우 외로운 위치에 있었다. 가족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주변 사람들까지 자신보다는 남편의 편을 드는 것을 지켜볼 때 부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남편에게 부인이 매우 외로울 것 같다고 말하자 남편은 자업자득이라며 부인을 탓했다. 남편은 자신은 피해자·희생자이며, 부인은 가해자라는 설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했다. 남편의 학벌에 비해 부인은 학력도 떨어졌고 외모도 남편만큼 출중하지 않다고 했다. 아내는 시댁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남편이 실제로 외도를 하지 않았다면 부인의 의부증은 남편보다 못났다는 열등감과 시댁의 무시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은 자신이 외도를 하지 않았음에 모든 집중을 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부인의 의부증이 점점 심해지는 결과만 만들었다. 부인의 의부증을 치료할 수 있는 건 부인에 대한 남편의 인정과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다행히도 남편은 아들과의 연합을 끊고 아내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이 조금 덜 멋있게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편이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더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