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근래 들어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집들이 눈에 띈다. 태양광 패널은 꼭 재래식 김발장에 김을 널어놓은 것 같은데, 그걸 보고 있으면 추위에 몸서리치며 일하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 내 자식들에게 그때 내가 하던 일을 시키면 과연 해낼까?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재래식 김 만드는 과정을 잠깐 설명하자면 이렇다. 여름날 아버지는 산에 올라 김발장으로 쓸 풀을 뜯어왔다. 그러면 그 풀을 잘 건조해 틀에 넣고 다 같이 발장 짜기를 했다. 우리 것을 다 하고 나면 남의 것도 만들어줘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가을에는 벼 타작이 끝나면 논에 김 건조장과 김 뜨기 작업장을 만들었다. 겨울이 되면 본격적으로 김 농사를 시작했다. 그땐 모든 게 수작업이어서 자식들도 일꾼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방학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김 농사가 한창일 때는 이른 새벽부터 일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님은 자식들을 향해 빨리 자라고 노래를 부르셨다. 반쯤 뜬 눈으로 논에 나가 고사리 같은 손을 호호 불고 발을 동동 굴러가며 김발장을 들어냈고, 김 뜨기 작업이 끝날 무렵이면 아침이 밝아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조장에 김 널기까지 마쳐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교에 가도 마음은 온통 마른 김을 작업할 생각뿐이었다. 김은 햇볕을 너무 많이 받으면 상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 중이라도 비가 오면 집으로 뛰어가야 했다. 이때는 선생님께서도 이해를 해줬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만들어도 부모님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김 한 장 먹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몰래 마른 김을 살짝 찢어 입으로 넣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 고생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얼마 전 딸아이가 황당한 질문을 던졌다. 면접장에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갈 때였는데, 논에 널려 있는 곤포사일리지를 가리키며 “엄마, 저 하얗고 동그란 뭉치가 뭐야?”라고 물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겨우내 남편과 내가 매일 하는 일이 바로 곤포사일리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참 황당하지만 요즘 애들은 새벽에 학교에 가면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엔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 잘되는 길은 공부뿐이다 싶어 집안일 하나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옳지만은 않다. 오히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낚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이스라엘 속담처럼 자식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고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서 세상의 풍파를 헤쳐갈 힘을 길러주는 게 부모의 도리인 것 같다. 그래야 추운 겨울이 지나 꽃 피는 봄날이 오는 것처럼 자식들의 인생에도 행복한 봄날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김미정(2013년 본지 생활수기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