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최근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3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며 연일 화제다.
영화계에서는 영화가 잘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억원 정도 규모의 투자를 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20억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정도 규모는 돼야 투자자들도 관심을 보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귀향>은 그런 관심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또 극장과 영화 배급사를 소유한 투자자들이 투자를 해야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쉽다는 공식이 있다. 하지만 <귀향>은 이런 공식에 해당되지 않아 애초부터 투자·제작·상영이 모두 어렵다고 여겨졌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반전은 대중의 지지에 의해 생겨났다. 국민 7만5270명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 12억원을 모았다. 손숙 같은 대배우들과 스태프들도 재능기부로 동참했다. 또 초기에 개봉관이 50개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개봉관을 늘려달라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그에 힘입어 개봉일 이 영화는 500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향>은 그렇게 보통의 영화산업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고통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실상이더라도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것은 위안부 문제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은 그래서 하나의 의식적인 행동이 됐다. <귀향>은 상업영화 시대에 기록과 기억의 가치를 지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극히 드문 사례가 됐다.
사실 투자자들이 이 영화에 선뜻 투자하지 못했던 건 그들이 위안부 문제에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돌아올 수 있는 수익인데 <귀향>은 여러모로 상업적 영화가 아니었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영화였다.
만일 흥행을 목적으로 했다면 영화는 더 자극적인 장면들을 뽑아낼 수도 있었다. 또 위안부라는 소재는 자칫 그 폭력을 보여주는 데만 치중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귀향>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의 상처들을 찬찬히 담아냈다. 굳이 젊은 여성 무당을 등장시켜 위안부 할머니들의 청춘과 소통하는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저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의 청춘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영화에 특히 20대 여성 관객들이 호응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대에 지옥으로 끌려간 무고한 청춘들과 지금의 어려운 현실 앞에 희생자가 되어버린 청춘들, 특히 여성들과 비슷한 정서를 교감했으리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지금의 청춘들이 흘리는 눈물 속에는 당대의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낸 이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동시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자신들의 처지까지 녹아 있다. 즉, 영화의 흥행에는 차가운 현실에 내몰려 있는 청춘들이 그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이 진정 넋이라도 돌아올 수 있게 해주자는 염원은 이 영화가 흥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