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봄처럼 사는 마음은 따스하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늘진 얼굴 위에 꽃을 피우게 하고 한숨짓는 사람에게 웃음 짓게 하는 마음이다. 굽은 마음을 활짝 펴주는 일까지 더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있으랴.
마음만은 언제나 봄처럼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기 몇 번이었던가. 작년 봄에도 나는 다짐했었다. 봄볕처럼 살아가리라고. 떨고 있는 자에게 이불이 되어주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긍지를 심어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도 지키지 못한 채 일년이 물살처럼 후딱 지나갔다.
봄은 언제나 새롭다. 맞이할 때마다 가슴 설렌다. 꼭 어린 손주를 품에 안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봄은 좋다. 이런 마음으로 일년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지난날 내 청춘의 꿈이 봄 산에 나뒹구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전가(田家)에 흐르는 봄볕 아래 농부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벌써 일년 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옆집에서는 고추 모종을 하느라 분주하다. 곡물을 심는 농심의 파장(波長)이 햇살에 출렁인다.
볕이 너무 좋아 지난 일요일 산을 찾았다. 아직도 계곡엔 차가운 옥수가 맑은 햇살을 머금고 다발로 흘러내린다. 산허리로 난 좁은 오솔길 사이로 다람쥐와 산토끼가 시비를 하는 모습도 좋고, 방장산 자락 영춘봉 산빛이 꽃술처럼 둥싯대는 것도 보기 좋다.
잠시 시름을 놓고 산마루 돌걸상에 앉아 세월을 거슬러본다. 뒤돌아보는 세월은 참 아름답다. 앞만 보고 내달렸던 시간도 있었고, 낭만과 꿈에 젖어 하루하루 산 날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차가운 웅덩이에 빠진 아찔한 시간도 있었고 늘 어긋나기만 하는 세월도 있었다. 정의라는 호기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 적도 있었고, 내 분수를 잊은 채 잘난 척 뽐내본 때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모두가 덧없는 일장춘몽이다. 그런데도 그런 시간들이 다정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속에 내 삶의 번뇌들이 묻어있어서일 것이다.
인생은 혼으로 느끼고 되새겨보아야 한다. 파란 창공이 하늘이 아니다. 진짜 하늘은 보이지 않는 내 안에 숨어 있다. 세상에는 까닭 없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속에 땀과 눈물로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따스한 이 봄도 혼자 찾아든 게 아니다. 사계절이 협동으로 만들어낸 바벨탑이다. 겨울이 없었다면 결코 봄은 찾아들지 않는다. 혹한의 강추위가 없었다면 아름다운 꽃망울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힘겹게 오르는 고단함 때문에 몸의 근육질을 만들 수 있듯이 고단함이 없다면 결코 인생을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힘겨운 등산길이다. 험난한 오르막길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다. 사계(四季)에서 겨울을 뺄 수 없듯이 고난이 없는 인생은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니다. 인생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역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주환(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