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가시려고요?”

　침대에 걸터앉은 노인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 순간이 마치 느린 화면 같다. 장면 하나하나 또렷이 보일 정도로. 닫혀 있는 노인의 입이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저녁을 드신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나를 부르셨다. 노인은 당신의 귀가 어두우니 남도 덩달아 어두울까 봐 누군가를 부를 때 최대한 목청을 올리신다.

　“내일 갈 때는 자유로를 타고 올 때는 일산을 들러라.”

　경기도 일산엔 당신의 누이가 살고 있다. 동행하지 않을 길을 가르치실 일이 없다. 해도 난 다시 한번 확인한다. 가시려느냐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형이나 나나 양손에 지팡이를 의지하지 않으면 거동을 할 수 없는 아버지가 명절에는 집에 머물기를 바란다. 수년 전 설날에 한번 지팡이를 잘못 짚어 넘어진 후로 당신은 의연한데 자식들은 예민하다.

　산소를 향해 오른다. 차를 세워 놓은 곳에서 불과 20여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노인을 부축하고 가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조심스럽기만 하다.

　“저것이 무엇이냐?”

　봉분 앞마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빨간 깃발과 안내판들. 높이로 치면 내 손으로 두 뼘을 넘지 않는 작은 표식들이 고조위, 증조위, 조위, 그리고 맨 아래 어머니의 무덤 앞에 꽂혀 있었다. 당혹스럽고 궁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형이 아버지의 귀에 대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예정된 서울과 문산 간 고속도로의 바로 옆 둔덕에 있어 이장이 불가피하다고.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노인의 꾸짖음에 오랜 세월 모시고 있는 큰아들은 답한다. “아신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아버지·어머니, 제가 내년에도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흔셋 잡순 노인이 당신의 부모 무덤 앞에서 눈물을 떨군다. 착시이겠거니. 허나 내 눈에는 내 아버지의 메마른 볼에 흐르는 한줄기의 눈물이 보인다. 오래전 같은 무덤 앞에서 떨궜던 그 눈물을 오늘 다시 보는 것 같아 난 아버지를 부축한 채로 고개를 돌렸다. 모진 애를 써서 눈물을 삼켰다. 나란히 선 4개의 산소를 오르고 내리는 데 반시간 이상 걸렸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두어번 잠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쉬어야만 했다.

　 “아범아.”

　맨 아래 당신의 아내와 마주하고 선 아버지가 큰아들을 부른다.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산소를 이장하지 말고 그 모든 자리에 괭이로 골을 파서 뿌리고 덮어. 내 뼛가루는 이 자리 어미의 것과 함께 뿌려다오.”

　동산 아래 통일로 건너편엔 항상 볕을 이고 있는 당신의 고향이 있다. 물론 우리 형제의 고향이기도 하다. 조상의 거처는 후손이 정할 바이지만, 형은 일단 군말 없이 “예”라고 답했다. 사후에도 그리울 고향. 일산 고모댁으로 가는 길 내내 가슴이 미어졌다.

　정화진(도시농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