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일시 : 2017년 08월 30일
김정민<바둑 칼럼니스트>
◇사진제공=한국기원
‘선구자’ 고(故) 조남철 9단(1923~2006)
조남철이 ‘한성기원’을 설립한 것은 광복 직후였다. 당시 바둑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황무지요, 맨땅 중에서도 돌밭에 해당됐다. 바둑 두는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한량(閑良), 보통은 노름꾼으로 불렸다. 바둑의 역사는 1945년 11월 한국기원의 모태인 한성기원 설립을 원년으로 한다. 일본에서 바둑문화를 접한 조남철은 바둑 황무지였던 한국에 ‘현대바둑’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한성기원이 대한기원으로, 다시 한국기원으로 바뀔 동안 한국 바둑은 조남철의 시대였다. 일본 유학을 통해 현대바둑으로 무장한 조남철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금(金)호랑이’ 김인 9단(1943~ )
차츰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바둑을 배워오는 젊은 기사들이 생겨났는데, 선발대에 김인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다부진 눈매를 지녔던 19세 소년은 일본으로 건너가 맹위를 떨치며 일본 바둑계를 휘저어놓고 귀국했다.
그는 1966년 ‘철옹성’ 조남철을 국수전에서 격파하는 일대 사건을 일으킨다. 조남철을 1인자의 상징인 ‘국수(國手)’서 끌어내린 김인은 거칠 게 없었다. 그는 197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타이틀을 독식하며 바둑계 호랑이로 군림했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1953~ )
천하의 김인도 밀려오는 장강의 물결은 막을 수 없었다. 1975년, 일본에서 수학하다 병역 문제로 귀국한 ‘천재기사’ 조훈현이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과 동시에 5관왕이 된 조훈현은 5년이 지난 1980년 모든 타이틀을 석권한 ‘전관왕’에 오르며 ‘조훈현 제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조훈현은 1989년 제1회 응씨배에서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던 중국의 녜웨이핑을 3대 2로 꺾고 초대 우승자로 등극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한국 바둑이 세계 정상에 첫 깃발을 꽂는 순간이었다. 제1회 응씨배를 석권하며 세계 최강 대열에 올라선 조훈현.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서슬 퍼런 바둑황제의 제국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제자에 의해 무너지게 될 줄은.
‘돌부처’ 이창호 9단(1975~ )
조훈현에게는 1984년에 받아들인 내(內)제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이창호였다.
당시 조훈현은 자신이 받아들인 ‘호랑이새끼’가 크는 데 1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이창호는 불과 5년 만에 발톱을 드러내 1989년 전통의 국수전을 스승에게서 빼앗더니 1990~1991년에는 최고위전·명인전·대왕전 등 모든 기전에서 조훈현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스승을 격파한다.
이창호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국내외 타이틀 140개를 쓸어담으며 세계 바둑계를 독재 통치했다.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는 ‘공한증’을 일으킬 정도로 돌부처 이창호는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쎈돌’ 이세돌 9단(1983~ )
보통 불세출의 천재는 100년에 한번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동시대에 조훈현·이창호에 이어 또 한명의 천재가 탄생했으니, 그가 바로 이세돌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창호 시대도 2005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쇠퇴의 조짐을 드러냈다. 이때 이세돌이 한국랭킹 1위 자리로 치고 올라갔다. 2010년에 이르기까지 이창호와 힘겨루기를 한 그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무려 27개월 연속 한국랭킹 1위에 오르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한다.
2014년 1월, 이세돌은 중국에서 태어난 필생의 맞수 구리와 상금 500만위안(약 8억7000만원)이 걸린 ‘10번기’를 벌여 세계 바둑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이세돌은 예상을 뒤엎고 6대 2로 손쉽게 승부를 결정지으며 이 시대 영웅임을 당당히 증명했다. 그리고 이세돌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