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2014년 가을, 무동리라 불리던 동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맞닥뜨린 건 황량한 바람이었다. 가장 작은 행정단위인 리에 들어선 아파트단지는 외계별에 만든 우주기지처럼 생뚱맞게 보였다. 아파트 앞엔 작은 상가가 한곳 있었는데 세탁소 한곳, 반찬가게 한곳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서나 밥을 먹기 위해서 항상 읍내로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동네 식당에 들렀다. 별 기대는 없었다. 국수·김밥·두루치기를 파는 식당이었다. 아내는 입맛이 까다로웠지만 운 좋게도 동네식당은 단골이 되었다. 방금 만든 듯한 신선함과 먹기 좋게 손질한 밑반찬에 첫마음이 열렸고, 재료 본래 맛을 살린 본 요리가 아내의 마음을 마저 열었다.

　황량했던 동네에서 단골식당을 하나 찾은 게 감사했고, 그 덕분에 읍내 나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여름엔 김치말이국수가 새로 추가됐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순두부찌개와 우동도 새로 생겼다. 아내와 난 ‘우리집 사내식당’이라며 즐거이 그곳을 찾았다.

　사장님은 종종 문을 닫곤 했다. 입구엔 ‘개인 사유’라는 짤막한 문구뿐이었다. 그 대부분이 집안일이라는 걸 뒤에 알게 됐다. 때로는 손자를 돌보러, 때로는 남편 생일상 등 가족 대소사를 챙기러, 때로는 외국 나가는 자식 내외 뒷바라지하러 가게문을 닫았다. 가게도 바쁘지만 집안일도 무척 바쁜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장님이었다. 아쉬운 건 아내와 나였고, 가게문이 열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밥을 먹으러 달려갔다.

　큰 변수가 생긴 것은 지난해 11월. 입구에 ‘가게 인수할 분 구함’이라는 종이가 붙었다. 아들 따라 내려온 사장님이 아들 따라 다시 올라간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아내 낯빛이 흐려졌다. 방법이 없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내가 묘수를 냈다. “요리를 배우자!”

　매주 한차례씩 식당 사장님께 요리를 배웠다. 덕분에 사장님의 지난한 역사도 알게 됐다. 사장님은 강원도 출신이었다. 어느 날 큰 태풍에 집이 다 떠내려가 버렸단다. 살기 위해 온 가족이 경기도의 모 염전으로 이주했다. 오빠가 소금밭에서 일하고, 그 돈으로 식구가 먹고 살았다. 결혼한 뒤에는 경기도 어느 동네 앞에서 분식집을 차려 아들 둘을 키우고 집안 살림을 꾸렸다. “내가 만든 떡볶이 안 먹어본 동네 초등학교 아이들이 없을 것”이라는 사장님 말에는 거친 세월을 뚫고 나온 사람의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가족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밤길 마다하지 않고 몇백킬로미터를 달려가는 까닭은 온 가족이 전쟁과 같은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요리수업은 얼마 전 끝이 났다. 며칠 전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웃으면서 달력을 쳐다보셨다. “이제 두달 정도 남았을까요. 떠날 날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다. 우린 또 다른 단골식당을 찾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단골가게가 있는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의 향기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김대홍(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