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언론매체를 통해 삼성가의 딸 이부진씨의 이혼을 둘러싼 공방이 전해진다. 남편이 가정을 등한시했다는 부인의 이혼 사유에 이어 이제는 남편이 자신의 부모가 손자가 아홉살이 되도록 볼 수 없었다며 호소를 하고 있다. 각자의 관점에서 관계가 악화된 사유를 하나씩 꺼내고 있다. 이는 이혼과정에서 흔히 보는 ‘더러운 빨래 꺼내기’ 작업이다. 꺼낼수록 가슴만 답답해지건만 한사람이 뭔가를 꺼내면 다른 한편이 또 다른 것을 꺼내면서 쌍방공방은 이어진다. 무엇인가가 꺼내질 때마다 그것을 접하는 제삼자들은 한쪽 편들기 역동에 휩싸인다.

　재벌가의 딸과 평범한 회사원의 만남이라는 그들의 결혼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좋다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사회 통념을 깨는 그들의 만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에 대한 동경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사랑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남편은 부인을 통해 신분이 상승되며 일명 ‘남데렐라’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는데 왜 남데렐라는 힘든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신데렐라 동화가 그들의 결혼식으로 끝이 났기 때문에 그 후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해주지 않는다.

　신데렐라가 재투성이의 운명을 바꾼 것은 불운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으며, 세상의 억압에 맞서 자신이 근원적으로 고귀한 운명을 지녔다는 꿈을 잃지 않은 데 있다. 왕자는 가려져 있는 그러한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내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데렐라가 왕궁에 들어가 황태자비·왕비로 살아가려면 재투성이로 계모의 구박을 받는 것 이상의 고충이 따랐을 터다. 어쩌면 부엌에서 재투성이로 일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만큼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새로운 역할과 관계 속에서 의연하게 자기를 지켜낼 내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배우자의 만남은 한쪽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양쪽의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기우는 결혼이란 없다. 왕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완벽한 존재 같지만 그 안에는 재투성이와 같은 상처와 무력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 배우자를 통해 이러한 자신을 만나는 것이며, 또 이를 수용하고 이겨나가려는 무의식적 의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와 왕자는 상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한 것이었다.

　아무리 참된 사랑이라고 해도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남편을 재벌가의 자녀로 만들 수 없듯이, 아내를 평범한 소시민의 자녀로 만들 수도 없다. 참된 사랑이라면 상대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가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배우자는 ‘숨겨진 나’와 ‘보여지는 나’를 통합해 나 자신을 더 사랑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바로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배우자 역할을 과연 몇이나 하고 있을까? 이혼하는 부부에게 “변호사가 아무리 옆에서 권하더라도 더 이상의 더러운 빨래 꺼내기 작업을 하지 마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것은 서로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뿐이다.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한국가족상담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