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대숲에 찬바람이 내리고 매화 눈이 설풍(雪風)에 설레더니, 어느덧 또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남쪽에서부터 꽃 소식이 몰려올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첫 시작은 장엄하면서도 설렘이 묻어 있습니다. ‘올해만은 허사로 보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아니더라도 가슴 한가운데 주홍빛 진양조가 흘러나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린 새해를 맞는 축복을 누린 셈입니다.

　우아하면서도 신비로운 첫 시작. 그 속엔 수만개의 반짝이는 별빛이 숨어 있습니다. 이제 그 별빛을 줍기 위해 땀 흘려야만 하는 인생, 그것이 공허가 되지 않기 위해 원점에 돌아와 지난날을 되새겨보는 순간을 달빛 아래에서 가져봅니다.

　참, 아름다운 것이 인생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토록 수럭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돌길을 걷고 가시밭길을 걸었던 지난날도 이제 별빛 추억이 되어 가슴 속에서 머뭇거립니다. 생명이란 성스럽고도 찬란한 선율입니다.

　꽃피는 봄날이 생명의 무대라면, 그 무대를 장식하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의 춤사위입니다. 동백나무 위의 붉은 동백꽃이 짐이 아니듯, 삶의 등짐도 짐이 아닙니다. 바다에 파도가 잘 날 없듯이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고난은 고난이 아니라 깨우침이요, 고마움입니다.

　20세기 예언자라 불리는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상대방의 깊은 내면에 있는 그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인정과 격려로 그것을 다져주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올해만은 부버의 말을 되새기면서 한 해를 보내려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지식도 아니고 양심도 아닙니다. 감정이라는 가시입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감정을 조절하는 일입니다. 한 포기의 들풀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7년이란 응달의 세월을 참아내야만 하고, 한 마리의 매미가 날기 위해선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눈뜸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도 사람이 되기 위해선 형극의 담금질이 필요합니다.

　올해만은 내 마음의 정원에 꽃씨를 뿌릴 것을 다짐해 봅니다. 내 가치를 소중히 여겨 시원찮은 나를 인간으로 태어나는 데 힘쓰려 합니다. 아울러 언제나 창문을 열어놓고 청향(淸香)을 마시며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는 한 해이고 싶습니다.

　정주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