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신문

　‘도령(稻靈)’이라는 말이 있다. 쌀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원시 신앙이다. 만약 지금 시대에도 도령이 있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쌀시장은 개방되는데 쌀 소비는 줄어드는 현 상황을 보면서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풍년이 달갑지 않은 이상한 수확철, 쌀의 하소연을 들어본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 배 속을 채워온 지 수천년.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요즘처럼 위태로웠던 적은 없었다. 가마니에 담겨 가만히 있는 줄 알지만, 실은 나도 할 말이 많다.

　돌이켜보면 과거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머슴밥을 먹으며 밥심으로 살았고, 아이들은 밥그릇에 붙은 쌀 한톨까지 싹싹 긁어 먹었으니.

　그뿐인가. 나는 단순한 곡식이 아닌 이 땅의 ‘근간’이었다.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라는 말처럼 노동 집약적인 재배 특성으로 인해 마을이 생겨났고 농경문화가 형성됐다. 또 생태계 보전, 자연경관 유지, 홍수 조절 등 우렁각시처럼 묵묵히 수행해온 나의 ‘공익적 기능’은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조원에 이른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쌀밥에 고깃국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도대체 왜??

　기술의 발달로 쌀 생산량이 증가한 것은 그렇다 치자. 통상 압력으로 쌀시장이 개방된 것도 할 말은 많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80년 132.4㎏에서 2013년 67.2㎏으로 30여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진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쌀 말고도 먹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지금 먹는 먹거리들이 과연 몸에 좋은 것인지, 그런 먹거리들을 먹은 결과가 무엇인지.

　사실 내 잘못도 있다. 잘나가던 시절만 믿고 나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니. 쌀을 한낱 탄수화물 덩어리로 보고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은 그 반대다. 쌀 속엔 탄수화물뿐 아니라 단백질·지방·비타민·미네랄 등 영양성분이 고루 들어 있어 여러 질환에 도움이 된다.

　하태열 한국식품연구원 박사는 “비만·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에 효과가 있는 것을 비롯해 쌀의 다양한 기능성이 밝혀지면서 최근 세계적으로도 쌀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아침밥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다. 뇌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 집중력도 높여준다. 아, 그렇다고 꼭 밥만 먹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떡·쌀빵·쌀과자·쌀국수 등 많은 쌀가공식품들이 개발돼 있으니 다양한 형태로 쌀을 즐기면 된다.

　요즘 나를 위해 정부와 농협, 시민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였다고 한다. 학교에 아침급식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쌀가공식품을 공급하는가 하면,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대대적인 쌀 소비촉진운동에 나섰단다. 전태진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대외협력실장은 “쌀 중심의 올바른 식단을 지속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한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 결론을 말하겠다.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리려는 게 아니다. 쌀의 가치와 농업의 미래까지 모두 헤아려달라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건강하게, 속 편하게 살고 싶다면 하루 세끼 나를 애용해주시라. 수천년 침묵해온 쌀 한알의 간곡한 부탁이다.

　◇참고자료=<쌀을 말한다>(농민신문사), <쌀의 새로운 가치>(농촌진흥청 인테러뱅)

　김봉아 기자 bong@nongmin.com